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드스톡 페스티벌 (문단 편집) === 1999년 우드스톡의 문제점 === * 살인적인 바가지 당시 주최측은 케이터링, 머천다이즈 업체들과의 1대1계약이 아닌 중간업체를 통한 계약을 맺었으며 입구에서부터 식수, 도시락 반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입구에서부터 관객들이 싸온 식수, 빵, 음료수, 먹거리들이 마구잡이로 압수당해 버려졌으며 이것들은 하절기 32~34도를 웃도는 뉴욕 롬의 날씨에 속절없이 썩어나가며 갖은 오염을 발생시켰다. 한마디로 우드스탁 주최사가 아닌 중간업체가 판매권을 독점했으며 무시무시한 바가지를 행사했던 것이다. 당시 시중에서 60센트 정도면 살 수 있었던 500ml 생수를 무려 4달러라는 현시점 기준에서도 미친 바가지를 씌운 것도 모자라, 금요일에 시작된 공연이 일요일날까지 진행되면서 품귀현상이 발생해 생수는 한 통에 무려 16달러선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이에 참가 관객들은 심각한 불만을 가졌고 마지막날 벤더 빌리지(푸드코트)를 습격하는 폭동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한편 버드와이저 가든에서는 염가로 술을 뿌려댔고 미성년자이건 성년이건 확인조차 안하고 맥주 탭이 닳도록 술을 팔았다. 그리고 음료수 한 잔에 풀떼기가 전부인 샐러드 콤보가 당시 가격으로 9달러였다고 한다. * 부족하고 미숙한 진행인력 3일간 진행되는 행사임을 고려할 때 위생팀을 직영으로 편성해서 상시 쓰레기들을 외부로 실어나르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외주계약으로 수거트럭이 아주 가끔 오는게 다였고, 폭동이 일어난 토요일 오후부터는 무섭다는 이유로 행사장 내로 들어가길 거부했다. 쓰레기와 오물들은 방치되어갔고 폭염에 무섭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또한 관객들의 수에 비해 생리 현상을 해결할 만한 기본적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분노한 관객들이 부순 상수도 라인에 노상방뇨, 대변, 이동식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분변이 섞이며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발병 사례가 전무했던 이른바 "참호구강염"(Trench mouth)이 1990년대 뉴욕에서 발생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또한 진행측은 무더위를 이유로 열을 식힌다는 명목으로 현시대의 워터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물을 뿌려댔고, 이렇게 뿌려진 물은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된 잔디지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군중들이 부순 상수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 역시 화장실로 흘러들어갔고 수용량 초과로 인해 오물 섞인 물이 그대로 역류하여 반경 수 미터가 오물로 뒤덮혀 버리는 참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경비인력 또한 무능하긴 마찬가지여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팀이 존재했으나 소수인원인 것도 모자라 관객들은 아무도 이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경비업 경험도 없고 일에 대한 책임감도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관객들의 방종을 넘어선 기행에 이들도 겁을 먹기 시작했던 것. 특히 마지막 날 레드핫 칠리 페퍼스 스테이지에서는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총기반대 단체와 연합하여 10만여 개의 양초를 나뉘어주고 촛불집회를 연출하려고 했지만 이는 대규모 폭동으로 번진다. 나름 행사장 내 흉기 및 화기 반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통제했던 행사였는데, 관객들이 미쳐버린 공연 막바지에 10만여 개의 불을 손에 쥐어준 것이었다. * [[레이브]] 파티 어찌보면 소요를 촉발시킨 만악의 근원격 행사이다. 취지는 주간 스테이지에서 여흥이 덜 풀린 관객들을 위한 대규모 야간 클럽이라는, 페스티벌 관객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할 프로그램이었다. 스테이지 공연이 끝난 후 야간부터 격납고를 개조한 파티장에서 레이브 파티가 개최되었고 취지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대낮부터 이미 술과 마약에 쩔어버린 4천여명의 관객들이 격납고 안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금요일 밤의 [[케미컬 브라더스]], 토요일 밤의 [[팻보이 슬림]]이라는 미친 라인업으로 달리게 된다. 공연장에는 LSD 등 마약을 급조해서 판매하는 업자들이 아주 많이 숨어들어와 있었는데, 격납고 같이 어둡고 외부와 차단된 공간은 이들의 좋은 영업장이 되었다. 결국 여기선 약에 취한 채 이성을 잃은 천명 단위의 사람들이 발광하며 춤추고 난교하는 지옥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7월 24일 토요일 공연이었던 [[팻보이 슬림]]의 무대는 완전 아수라장이었다고 전한다. 팻보이 슬림이 훗날 진행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어두운 격납고 안에서 공연을 하던 중 손전등으로 무대 아래를 비추어 보니 사람들이 뒤엉켜서 성관계를 하고 있었고 멀리서는 사람들이 난교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쉐보레]] 승합차가 격납고 안으로 들이닥치고 거기에서 약 20에서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승합차 난입을 재미있는 이벤트의 일종으로 착각했던 팻보이 슬림은 이에 실망한다. 거기에 추최 측은 사태를 진정시킨 뒤 격납고 안으로 난입한 승합차를 바깥으로 빼기 위해, 디제이인 팻보이 슬림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뮤직 컷을 하였으며 팻보이 슬림은 어이를 상실한다. 거기다 공연이 갑자기 멈춘 것에 대해 분노한 관객들이 그에게 쓰레기 세례를 날려 졸지에 망신도 당한다. 여튼 주최 측 관계자 중 한명이 승합차를 빼기 위해 문을 연 순간 안에서 마체테를 든 괴한과 옷이 벗겨진 채로 정신을 잃은 소녀, 바지를 주섬주섬 올리고 있던 소년의 모습을 발견하고 곧바로 이들이 차에서 윤간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팻보이 슬림의 매니저는 이 장면을 목도하고 공연장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선 최대한 빨리 팻보이 슬림을 데리고 공연장을 탈출하여 공항에서 날밤을 새운 후 바로 영국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고 한다. 차에서 윤간을 당한 소년과 소녀는 곧바로 앰뷸런스에 태워져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관객들의 방종 주최측에서도 30주년 당위성('사랑과 평화')을 위해 티벳 승려들을 초청해 축복, 명상회를 열었고 이에 편한 마음으로 참여한 관객들도 있었으나 이들도 점점 광기 어린 분위기에 미쳐가게 된다. 첫날 금요일 일찍 무대에 오른 락커이자 여장부인 [[셰릴 크로우]]의 공연에서는 남성관객들이 'Show your tits'(찌찌를 보여줘)라는 챈트를 합창했으며 크로우는 내 가슴을 보고 싶으면 돈 더 내라고 일갈하고는 쿨하게 넘겼으나, [[MTV]] 인터뷰 코너에서도 챈트가 쏟아지자 대놓고 저 머저리들 패러 내려가고 싶다고 한마디 남겼다. 일요일 후반무대에 올라온 [[쥬얼]]은 쉐릴 크로우의 이야기를 듣고 잔뜩 긴장한 채 무대에 올랐다가 서둘러 레퍼토리를 끝내고 바로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다. 주최측 임원의 증언이 따르면 원래 금요일부터 그런 미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백인 남자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룹들이 [[프래터니티|대학교 사교동아리]]처럼 보이는 막가파식 술판과 기행을 벌이면서 그 분위기가 퍼진 것 같기도 하다고 하였다. 한편 1999년 당시는 밀레니엄을 앞두고 발맞추어 봇물터진 인터넷 문화로 인해 이른바 엽기(bizarre) 문화가 전세계적인 키워드였으며 한국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탈권위, 탈장르적인 사조가 대두되며 고전 헤비메탈의 강력함, 하드코어 펑크의 폭력성과 힙합의 랩핑, 그루브한 훵크, 그런지 문화, 스케이트 보드 문화가 뒤섞인 누메탈이 전 세계를 강타하던 시기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매체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하던 때이다. 또한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던 첫 세대인, 이 30만에 달하는 (78~82년생) 관객들은 찌는듯한 더위, 도처에 널린 술과 마약, 주최측의 무능한 운영에 같이 미쳐가기 시작한다. 공식적으로 보고된 강간은 10건 미만이나 그 몇십 배는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공식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게 희한할 정도. 또 [[MTV]]가 개입하면서 페이퍼뷰(Pay Per View)로 현장중계를 했는데 이 역시도 취지는 좋았으나 결국 토플리스 여성들, 나체같은 자극적인 영상만 골라서 내보내며 여성 관객들의 탈의를 부추겼다. 이는 집단 성추행, 강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MTV]] 진행자였던 흑인 여성은 실황 인터뷰 때 갑자기 엉덩이가 뜨거워 화들짝 놀랐는데 누군가가 [[담배빵]]을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게 더 기가 막혔다고 한다. 또한 원년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히피 중년들도 과거의 추억을 찾아 공연장에 들어왔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목불인견의 광경에 개탄하며 공연장을 떠나 버렸다. * 뮤지션들의 책임감(?) 지금도 이견이 있는 사항이다. 일단 역사적인 1999년 7월 23일 금요일 첫무대의 주인공인 [[제임스 브라운]]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뭔가 계약조건에 불만을 가진 브라운이 무대에 오르길 거부했던 것이다.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 당시 영상을 보면 심기 불편한 표정의 제임스 브라운이 무대를 기웃거리며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브라운은 잔금(?)을 즉시 입금 안하면 공연 안하겠다고 버티고 있었던 것. 계속 공연이 딜레이 되고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지자 무대에 미리 올라와있던 브라스밴드 리더는 다급해졌고 연주를 강행해버렸다. 이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무대에 오른 제임스 브라운은 첫곡 섹스머신을 착잡한 표정으로 불러야 했다. 금요일 헤드라이너였던 [[Korn|콘]]은 콘 역사에 남을 역대급 무대로 말 그대로 박살을 내버렸고 관객들은 날뛰기 시작했다. 다음 주자인 [[부시#영국의 록밴드|부쉬]]의 개빈 로스데일은 콘이 너무 분위기를 띄워놔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봐 상당히 불안했다고 하며 분위기를 수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당대의 히트넘버 swallowed를 열창했다. 그리고 열띤 호응을 받으면서도 장내 분위기를 차분히 만들며 퇴장했다. 하지만 3일 내내 이어지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키드락]], [[DMX]]같은 강력한 뮤지션들은 분위기를 들끓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정점은 7월 24일 토요일에 있었던 [[림프 비즈킷]] 무대였다. 당시 비즈킷은 전세계 넘버원 밴드임과 동시에 동세대 미국 틴에이저ㅡ20대 사이의 남성들에게 아이돌과 같은 존재였고 보컬 프레드 더스트의 안하무인적 자신감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의 락스타와는 달리 흔한 브랜드의 (DC,디키즈)티셔츠에 바지,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무대를 뒤흔드는 더스트는 동시대 소년과 청년들에게 롤모델 그 자체. 등장하자마자 "여기 [[*NSYNC|엔씽크]] 좋아하는 사람있냐?"라는 디스부터 시작해서 히트곡 메들리로 달리자 관객들은 슬램을 하다 방송탑을 뒤흔들기 시작하고 방송탑 골조에 박아놓은 합판 자재를 떼어내고 무차별 패싸움이 시작됐다. 게다가 그 합판을 보드삼아 군중위에서 서핑(!)을 하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펼쳐졌고 당시 비즈킷 최대의 히트곡인 Faith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프레드 더스트도 그 합판 위에서 서핑을 타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연출했다. MTV 자본이 깊숙히 개입한만큼 인터뷰어가 무대에서 내려올 때부터 따라붙으며 인터뷰를 했는데 위험에 대해 관중을 계도했었어야지 않냐라는 질문에 더스트는 난 상관없다는 식으로 쏘아 붙이듯 답하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밴드 결성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인 단시간에 부수고 앵콜곡 없이 내려간다를 시전했고 항상 공연마다 장렬하게 불태우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 역시 관객선동에 일조했다. 마지막날인 7월 25일 일요일의 헤드라이너였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림프 비즈킷이 지른 불에 다이너마이트를 까버렸다.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플리(RHCP)|플리]]는 아예 팬티까지 벗고 나체로 연주했으며 역시 역대급 무대를 선보이다 선술한 주최측의 촛불집회 유도로 인한 방화사태가 발생한다. 이에 주최측에선 공연중단을 선언하고 소방대 투입을 결정하나 소방대는 무서워서 못들어간다는 이유로 거부.. 대기하던 레핫칠에게 주최측은 당신들 말은 들을거라고 올라가서 한마디 해달라고 하나 앤서니 키디스는 뭔 할 말이 있겠냐고 거절했고 사태가 조금 수습되자 다시 공연은 시작된다. 그런데 앵콜곡으로 부른 게 지미 헨드릭스 트리뷰트 커버 "Fire "였다.... 이때부터 방화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일요일 소요사태로 이어진다. 사실 이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콘의 역대급 무대에서 이어진 부쉬의 공연에서 개빈 로스데일이 발휘한 통찰력은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시종일관 달리는 무대였음에도 자각으로 완급조절을 한 것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콘의 조나단 데이비스도 무대에 올라 이런 개판은 처음봐서 긴장했다고 술회했으며 펑크밴드인 [[오프스프링(밴드)|오프스프링]]도 대놓고 "여기저기 다 벗고 뛰어다니고 있네. 이게 멋있는거냐?"라며 일갈하고 공연했다. 평상시 캐리비안 흑인의 뿌리와 한을 노래했던 [[푸지스]](Fugees)의 와이클리프 쟝이 7월 24일 토요일 공연에서 솔로로 나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금부터 나에게 쓰레기를 던져라라고 외친 후 기타로 미국 국가를 연주했다. 이때 압도적인 쓰레기들이 무대위로 던져졌고 쟝은 국가연주를 마친 뒤 기타를 부숴버렸다. 주최임원 술회에 따르면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어감을 느꼈다고. 특히 관객들을 제대로 선동해 놓은 림프 비즈킷은 평가가 매우 갈리는데 당시 주최측 임원중 한명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프레드 더스트를 "개자식" 이라고 부르면서 매우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 부족하고 미숙한 진행인력2 1999년 7월 25일 일요일 오전, 더위와 비위생, 바가지에 질린 사람들이 오전부터 떠나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의 이유는 단 한가지. 우드스탁99 특유의 방종에 맛이 갔거나 진성 헤드라이너는 따로 있다는 괴소문 때문이었다.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레드핫 칠리 페퍼스 다음 스테이지로 재결성한 [[건즈 앤 로지스]]가 나올 거라든가, [[그레이트풀 데드]]가 나올 거라든가, 블러드 스웻 앤 티어스가 나올 거라든가, [[프린스]]가 나올 거라든가, 심지어 [[마이클 잭슨]](!)이 역대급 무대로 올라올 거라더라는 식이었다. 한마디로 주인공은 아직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다는 기대감. 하지만 레드핫 칠리 페퍼스가 마지막이었고 더이상은 없었다. 당시 주최측에서도조차 마지막 헤드라이너가 있다는 카더라가 있었을 정도. 페퍼스가 마지막으로 지미 헨드릭스 커버를 하고 퇴장하고 그때도 남아있던 관객들은 끝판왕이 올라오길 고대하는데... 결국 남아있던 관객들이 본 건 스크린에 펼쳐지는 69 원년 공연의 [[지미 헨드릭스]] 영상이었고 "감사합니다. 곧 다른공연에서 만나요~" 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였다. 애초에 히든카드는 없었고 주최측 직원들도 그런 게 있대 라면서 수근거린 결과이며 수장 마이클 랭조차 여기에 대해 아니라고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이때부터 남아있던 잔존관객들이 정말로 미쳐버리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